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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관한이야기

개 열받는 칵테일 '라모스 진피즈'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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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bar

 

칵테일을 만드는 입장에서 고객에게 주문을 받을 때 곤란한 상황이 있다.

손님에게 배려를 바라는건 바텐더로서 실격이지만

정말이지 무자비한 오더에 고통을 겪는 순간들이 종종 발생한다.

 

'모히토 8잔 주세요^^ 저희는 4명이지만 술을 빨리 마시니까 한 번에 8잔 주세요
아참 2잔은 논알콜로 해주세요, 2잔은 독하게, 2잔은 라임 많이.

'피나콜라다 4잔, 하나는 기본으로, 하나는 논알콜로, 하나는 얼음 빼고, 하나는 술 두배로'

'레인보우(혹은 세븐레이어) '푸스카페 스타일'로 7잔주세요 ^ㅇ^'

'따뜻한 칵테일 4가지 종류 다른걸로 각각 한잔씩 주세요 (찡긋)'

 

이런 주문들이 들어올 확률은 아주 극한의 확률이긴 하지만

바쁜 상황에서 마주하게되면 손발이 꼬이고 시스템이 붕괴되고

내 맨탈도 붕괴되어 패닉을 겪을 수가 있다.

 

물론 업장의 환경이 저런 주문들까지 소화할 수 있도록 장비와 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실력 좋은 바텐더 2~3명이서 능숙하게 해낼 수도 있겠지만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보통 해법은 미리 주문을 받는 서버나 바텐더가 상황을 인지하고

고객에게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고 미리 고지해 주고

천천히 순서대로 차근차근 빼나 가는 방법도 있고

애초에 메뉴판을 전략적으로 잘 짜서

메뉴 리스트에 있는 칵테일로 유도되도록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바텐더 한 두 명이 겨우 음료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 넓지 않은 경우에는

한 팀당 4명 이내 6명 이내로 제한하는 등 입장 고객수를 제한하는 경우도 있다.

 

자 이제 '그 칵테일'에 대해 알아보자.


늠름한 라모스진피즈

라모스 진피즈 (Ramos Gin Fizz)

새끼 칵테일이 가장 대표적인 바텐더들을 괴롭히는 칵테일 중 하나이다.

레시피부터 한번 확인해 보자

아니, 들어가는 재료부터 뭐가 있나 먼저 확인해 보자

 

1. 라모스 진피즈의 재료

1. 진(Gin)
2. 레몬주스 혹은 라임주스
3. 설탕시럽
4. 크림
5. 계란 흰자
6. 오렌지 플라워 워터
7. 바닐라 액스트랙
8. 탄산수

 

다른 재료가 들어가는 경우도 있겠지만 일단 기본적으로는 이 정도가 될 것이다.

재료의 숫자도 많고, 크림과 계란은 관리가 까다롭고, 

오렌지 플라워 워터와 바닐라 액스트랙은 다양하게 자주 쓰이는 재료도 아니다.

이 칵테일 하나만을 위해서 구비해 놓기도 애매한 재료이다.

 

요즘시대는 점점 바의 수준과 실력이 상향평준화 되고 있어서

라모스진피즈 주문이 들어왔을 때 모른다고 하기도 애매하고, 못한다고 하기도 애매하다.

 

'다른 데서는 해주던데...' 같은 손님의 이런 멘트에 쉽게 긁히는 게 또 바텐더들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오렌지 플라워 워터든 바닐라 액스트랙이든 구비는 해놓고

라모스진피즈뿐만이 아닌 최대한 다른 칵테일에도 적용하면서 소진하려고 노력 중이다.


라진피 레시피 그림

2. 라모스진피즈 만드는 방법

 

1) 재료준비

진(Gin) - 60ml

레몬주스 - 15ml

라임주스 - 15ml

설탕시럽 - 30ml

생크림 - 30ml

계란흰자 - 1개 분량

오렌지플라워워터 - 5방울

탄산수 - 약간

 

*모든 재료는 미리 준비해놓고, 특히 계란 흰자는 미리 분리해 둔다.

재료 외에 셰이커, 글라스, 스트레이너, 얼음등도 미리 준비해둔다.

 

2) 드라이 쉐이킹

쉐이커에 탄산수를 제외한 모든 재료를 넣고 쉐이킹을 한다.

얼음을 넣지 않은 채로 다소 강한 강도로 해준다.

15에서 30초 정도 잘 섞이지 않을 것만 같은 재료들을 잘 섞어주고

공기도 잘 주입한다는 이미지로 쉐이킹 해주면 된다.

 

3) 쉐이킹

얼음을 넣고 쉐이킹을 하는 단계이다.

재료끼리 잘 섞는 쉐이킹은 앞서서 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온도를 잘 낮춰준다는 생각으로 해주면 된다.

 

자칫 전 단계에서 드라이 쉐이킹을 하면서 올라갔을 수도 있는 온도를

이 단계에서 떨어뜨려주어 크리미한 질감이나 단단한 거품이 더 잘 되도록 해준다.

 

드라이 쉐이킹보다는 조금 더 길게 1분에서 2분 정도 해줘도 괜찮지만

얼음이 너무 많이 녹지 않도록 주의한다.

 

4) 스트레이닝

쉐이킹 한 칵테일을 이제 스트레이너를 사용해서 글라스에 따라준다.

더블스트레인을 해준다. 큰 얼음도 물론 걸러내야 하고

아주 작은 플레이크 얼음도 걸러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단단한 거품 조직을 형성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5) 탄산수로 마무리

탄산수를 붓기 전에 조금 기다려준다 한 20~40초 정도.

쉐이킹이 중단되면서 운동량이 없어지면서

크림과 계란과 산(레몬, 라임)이 한데 만나면서 응고될 시간을 조금 줘야 한다.

그래야 탄산수를 부었을 때 라모스진피즈의 시그니처 이미지인

글라스 위로 거품이 올라오는 모양을 만들 수 있다.

 

 

*얼음 없이 서브되는 칵테일 이기 때문에 기존에 사용하는 글라스보다 작아야 할 것이고

거품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좁고 긴 형태의 얇은 하이볼이 적당하겠다

특별한 장식은 할 필요 없지만, 원한다면 레몬필 얇게 떠서 올리고

가운데에다가 빨대를 조심스럽게 꽂아서 무너지지 않게 서브하면 좋겠다.


 

과거 19세기 후반이나 20세기 초반, 이 칵테일이 만들어진 초창기에는

쉐이킹을 10분~15분 정도로 길게 해야 했었다고 전해지고,

이것을 소화하기 위해서 여러 명의 바텐더들이 릴레이로 어렵게 쉐이킹을 했었다는

그런 재미있어 보이는 스토리가 전해지고 소문이 나다 보니

짓궂은 손님들이 그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주문을 하곤 한다.

 

꼭 라모스진피즈가 아니더라도 손님은 바텐더가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또는 뭔가 둘만이 알고 있는 비밀코드 같은 하나의 매개채를 통해

남들은 모르는 우리들만의 소통을 하고 싶어 한다.

어찌 됐든 '라모스 진피즈'라는 주문에 뭔가 반응하는 바텐더가 보고 싶은 것이다.

 

물론 현대의 기술과 노하우가 많이 발전한 환경에서

좋은 얼음과 온도 관리, 메이킹 테크닉을 갖춘 똑똑한 바텐더들에게는

이제 더 이상 골칫덩어리가 아니기도 하다.

 

이걸 눈치 없이 능숙하게 쉽게 뚝딱 만들어 내면

손님은 약간 실망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악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일부러 귀찮게 만들려고 장난치는 손님에게는

이렇게 소심하게 복수하기도 한다.


 

내 돈 내고 내가 주문하겠다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나도 굳이 말리진 않겠다.

주문을 소화하는 것은 바텐더가 응당 할 일이고, 그런 장난에 어울려주는 것이 숙명이다.

 

하지만, 그 공간에서 좀 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바텐더에게 환영받고 좋은 접객을 받고,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길 원한다면

조금은 바텐더를 배려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라모스 진피즈 말고 다른 칵테일을 마시면서

 

Che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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